설교 본문: 시편 23편
설교제목: 하나님의 명함
설교자: 조용기 목사
오늘은 “하나님의 명함”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개인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만나면 먼저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한다. 명함을 보면 그 사람의 이름과 직업, 사회적 지위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따라서 명함은 사회적 상호 작용에 필수적입니다. 이 명함은 원래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모든 미국인과 유럽인이 이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 구약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또한 7개의 명함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일곱 장의 명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신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시편 23편에는 이 일곱 가지 하나님의 부르심 카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23편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계시이며 시편 23편이 그토록 감동적이고 축복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 로이”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나 시편 23편 1절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말씀합니다. 시편이 하나님을 목자로 계시하듯이 그의 명함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로이”입니다. 목자라면 양을 돌봐야 합니다. 목자가 양을 돌볼 때 목자는 자신의 필요가 있습니다. 양은 목자를 믿고 목자를 따르고 목자에게 양털과 젖을 공급해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며 양육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하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 않고 의심하고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우리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믿고 순복하고 따르며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양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십일조를 드리고 시간을 내어 섬기며 섬깁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양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좋은 것으로 하나님의 양을 기르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불신자들과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목자가 있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함을 주실 때 나는 “여호와 로이”입니다. 나는 당신의 목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며 시간과 돈과 사역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좋은 것으로 양육해 주십니다. 그는 우리의 목자 “여호와 로이”가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신은 어떤 명함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두 번째 명함은 “여호와 이레”입니다. 성경 시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것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이레”,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까? 친애하는 부모님,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신중하게 준비하십시오. 자녀는 아직 부모의 뜻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부모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고 자녀가 자라면서 부모의 계획은 하나하나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자녀들은 그저 부모를 믿고 걱정하지 않고 살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편재하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이레”인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없으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지각으로 깨닫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지능이 부족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나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사 예비하신 것으로 길을 열어주시니…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살아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면, 좋은 일을 만나거나, 근심할 때에 부족함이 없게 공급하시고,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이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염려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처럼 사는 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이 다 이방인들의 염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 “여호와 칠일”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교훈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명함을 주실까? 하나님의 세 번째 부르심 카드는 “여호와 샬롬”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성경 시편은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합니까?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평안하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여호와 샬롬”이 되십니다. 푸른 초장에 양 떼를 놓으면 굶지 않고 살이 찌지 않도록 뒹굴고 뒹굴고 풀을 뜯는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에 두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대신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 속에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주시고 샬롬이 되십니다. 우리의 삶을 푸른 초장으로 바꾸어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서 눕히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당신을 황무지에 두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북극 툰트라에 눕힐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의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 때 우리는 평생 마음에 깊은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평안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쉴 수 있는 물가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잔잔한 물은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마음의 평안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기도하는 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평강, “여호와 샬롬”이 거합니다.
돈은 인생의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아닙니다. 지위도 명예도 아닙니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평화롭게 자고 평화롭게 일어날 수 있고, 죽을 먹어도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안심이 될 때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평안이 없고 배불리 먹은 후에도 불안하면 얼굴에 빛이 없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주시고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샬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 샬롬”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여 평강으로 나를 채우소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푸른 풀밭에 누이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넷째, 하나님이 명함을 내밀는데 그것은 “여호와 라파”입니다. “여호와 라파”란 무엇입니까? 나는 네 병을 고치는 여호와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치유자이십니다. 성경 시편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시편이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했습니다. 소생한다는 것은 구하고 치유한다는 뜻입니다. 내 영혼이 병들고 내 영혼이 죽었을 때 하나님이 오셔서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병든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영혼이 소생하면 몸도 치유됩니다. 그분은 “마음이 그 병을 이길 수 있거니와 마음이 꺾이면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 몸을 치유하시며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신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훔치거나 죽이거나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도둑 악마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로마서 8장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 안에.” .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릅니다. 이 영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입니다. 이르시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가 또한 너희 죽을 몸에도 생기를 불어넣으시리라 우리가 일흔 살이나 팔십 살에 죽든지 한 번 죽으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시어 우리 죽을 몸을 살아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고, 백수가 되어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라파”는 우리를 소생시키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시각에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불신자와 신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당신의 삶은 성령에 의해 끊임없이 살아납니다. 당신은 항상 성령으로 새로워집니다. 주변에 적어도 두 사람에게 ‘성령이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항상 생명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구하십시오. 인생은 당신 안에서 넘쳐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또 다른 명함을 발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명함에는 “Jehovah Zidgenu”라고 쓰여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 시편 23편에서 “그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가 되셔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의 누더기를 걸치고 살 정도로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죄를 짓습니다. 썩고 죄 많은 넝마를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만 심판받고 멸망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 죄의 찌꺼기를 씻거나 흘릴 수 없습니다. 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세상 죄의 모든 누더기를 벗기고 십자가에 달리사 그 몸을 찢고 피흘려 그 모든 죄를 도말하셨으니… 당신은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와 싯게누”이시며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공의로우신가요? 그들은 우리와 똑같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했습니다. 이것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죄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서 법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평생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인정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게 서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악마가 비난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의의 영 곧 성령을 보내사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게 하사 우리로 죄를 범치 않게 하시나니 죄를 범하면 마음이 아프고 그 때에 억울한 일을 만나 통곡하고 회개하여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신은 “여호와 치두게누”의 신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 시편에 나타나 있는데, 그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기서 끝났습니까? 하나님은 “아니야, 명함 하나 더 줘야지”라며 여섯 번째 명함을 꺼낸다.
여섯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이 설명하는 바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기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인생의 시련과 환난을 가리킨다. 내 삶에 혹독한 시련이 오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다가오고 모두가 나를 떠날 때에도 ‘여호와 삼마’는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시련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으면 영과 육이 해를 받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해를 받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과 악, 승리와 패배, 질병과 건강이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신을 창조하기 위해. 그래서 요셉은 형들이 나에게 해를 끼쳤으나 하나님이 돌이켜 오늘 나를 애굽 총리로 삼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 삼마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 원수를 막대기로 치시어 우리를 해하지 않게 하시나이다. 하나님은 그냥 앉아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팡이로 인도하시고 막대기로 보호하시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권능으로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넘어져도 다시 살아나고 죽을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맙소사, 그렇다면 지금일 것이다. 우리를 위한 다른 명함이 있습니까? 아, 시편 23편을 읽어보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신은 당신에게 명함을 줍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명함은 “여호와 닛시”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십니다. 그런데 시편을 보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며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은 원수에게 가까이 가실 때 승리의 깃발을 드시고 원수의 눈 앞에 잔치를 베푸시며 먹게 하시고 성령의 기름을 우리 머리에 부으시며 형통 가운데서 높여 승리의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적군이 오지 않으면 “여호와 닛시”가 와서 깃발을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만났을 때가 발전해야 할 때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공격할 때 좋은 것을 더 먹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강하게 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원수의 공격과 압제를 당할 때 이 시간이 더욱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왜? 적이 올 때 “여호와 닛시”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승리의 깃발을 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많이 이길수록 우리는 더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평안할 때 평안하니 “여호와 샬롬” 이라고 하는 것이 좋고 전시에 원수가 접근할 때 우리 하나님이 “여호와 닛시”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것이 잔치이다. 주님의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여 승리의 잔이 넘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므로 이 시편 23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어떤 관계이신지,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시편 23편을 막연하게 읽지 마십시오. 시편 23편의 모든 구절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실을 알고 시편을 읽으면 감정이 가슴을 채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시편을 통해 은혜를 받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 때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을 지나온 것 같지만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심은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지금 살면 배고프고 슬프고 고생하고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면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
과거를 돌이켜보면 17세에 폐 질환으로 쓰러졌다. 그 당시에는 매우 슬프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그 말할 수 없는 낮과 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나는 학교를 떠났고 친구들은 모두 발전했고 나는 사회적 왕따가 되었다. 내가 내 영혼에서 겪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고통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일은 내가 소비로 괴로움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폐병이 없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았을 것이고,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온 가족이 구원받아 천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괴로웠지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한 삶이 성공이 아니었고 슬픔이 기쁨이요 절망이 희망이었음을 돌이켜 봅니다.
그러므로 실생활이 힘들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현실의 낙담과 고통이 하나님의 가장 큰 유익이요 선이요 자비가 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장래에 하나님의 일곱 이름으로 지탱하는 삶의 결과는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은 미래에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신을 믿는다. 나를 믿어; 내 아버지 집에는 저택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리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14:1-3). 바울이 말했듯이 땅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있는 줄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므로 눈물도, 슬픔도, 한숨도, 이별도, 울음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세상에 천국의 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하심이 나를 따르고, 앞을 내다보면 주님의 집에 내 집이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기뻐하고 기뻐하며 진실한 믿음의 삶을 살 때 큰 영광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보다 더 복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다-
시편 23편을 통해 이 명함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시켜 주신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막연하게 찾지 말고 하나님의 명함 하나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이 내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해하고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시편 23편을 펴서 모든 성도들에게 계시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